
친정에서 23년...! 내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나도 모르는 어느 회오리에 휩싸인 느낌을 받으며 한 남자를 따라 제 2의 인생을 시작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부모형제의 생활보다 더 길고 긴 세월맞이를 해나가는 중이다. 30주년이 넘어선 다음부턴 올해가 몇 주년 인가 싶어진다. 참 기인 세월을 살아 나가는 것 같은데, 계산을 해보면 33년 밖에 안된 건지...^^
그 사이 천국과 지옥은 하늘 위와 땅속이 아닌 내 가슴 안에 있다는 사실은 물론, 생활의 도를 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전연 알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같은 지붕아래 한 이부자리를 그리 오래 덮었고 한솥밥을 먹고 또 먹어도 알 수 없는 일이 사람 마음이니, 말로는 " 당신 뭐 색까지도 다 안다고" 하지만 내 어찌 내가 아닌 남의 속을 알 수 있으랴.
시드니에 있는 큰딸이 남친 과 함께 정식으로 결혼 승락을 받기 위해 집을 다녀갔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이란 말은 애들 아빠가 총각 때도 들었던 말이지만, 사윗감이 어느 한구석 미운 데가 없다. 이미 마음속으론 허락을 한터였지만, 그래도 형식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싶어 두 애들이 얌전히 앉아서 아빠 엄마가 뭔가 질문도, 덕담도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를 보며...
남편의 얘기가 끝나고 엄마로써 한마디! 언제든 지금의 초심을 잃지 말고 서로 아껴가며 잘 살아 가야 하지만, 특히 어려움이 찾아 왔을때 서로에게 더 신경을 써줘야 한다. 사람이란 누구나 편안 할땐 다 좋단다.허나 고난이 왔을 때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수가 있으니, 그럴 때 일 수록 더 조심하여 배우자 가 감동을 받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떠나고 남편과의 사이에 약간의 변화가 왔다. 작년 심장수술을 전후로 그리도 낯선 사람처럼 힘들게 하던 그 사람이 요즈음 다시금 예전의 남편처럼 변해가고 있는 듯.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변해진 모습에 그가 달라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적응이 안되던 그의 이기적이고 못된 새로운 모습들에 1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웠던지. 이런 모습을 보려고 그리 긴 세월을 이 사람과 동고동락을 했나 싶어 모진 마음으로 인연을 끊어버리려 생각한 것 도 수 차례.
없던 병이 생겨나고, 보물찾기 하던 흰머리가 이곳 저곳 모습을 쉽게 들이밀고, 가슴속에 타오르는 분노로 속을 태워내 삶의 희망까지 저버리고 싶었던 순간 순간들. 보기완 달리 고지식하고 뻣뻣하던 가슴속 기둥이 속안에 질러진 불로 태우고 태워내 까만 재가 되고 거름이 되어 새로운 어린 나무 하나가 생겨나니, 그가 달라 진걸까?
더도 덜도 말고 이 정도만 해줘도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 갈 건지...! 둘이서 텔레비전을 보다 문득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여보!~나 해외여행 가고 싶어 우리 나중에 애들 다 결혼 시키고 편안하게 여행 떠나자"
특별히 어느 곳이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냥 어 데로 인지 훌훌 떠나고 싶어졌다. "미국을 갈까?~" "미국?" 속으로 미국보단 더 조용하고 운치 있는 곳을 가고 싶은데 하면서 그냥 동조를 했다. "환 갑이 한국나이 61세야?" "응" "그럼 내 환 갑 때 당신 칠순 잔치를 한해 앞당겨서 같이 겸사겸사 여행하도록 하지. 우리 가이드 없어도 되지?" "무슨 가이드가 필요해~ 당신은 날 잘 만난 줄 알아 일본이든 세계 어느 곳이든 다 갈 수 있으니.." "ㅎㅎ 마자 당신 영어 잘하고 일어 잘하니...근데 난 일본은 안 갈 거야" (몇 개 국어를 좀 한다고 은근히 또 올리니 칭찬을 해준다.ㅋ)
"그럼 지금부터 열심히 모아서 올해는 유 보내고 2년 후엔 윤이 보내고 그 다음엔 우리 여행가야지. 미국항공편 끊을 때 한국에서 며칠씩 있다 갈 수 있게 하고...한달 정도는 여행시간으로 잡아야겠다."
컴 터 앞으로 다가간 남편 곁에서 노트 하나에 계획표를 적는다. 즐겁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꿈에서도 안보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시간이 지나, 여행계획을 짜고 이리 즐거워 할 줄은...
힘든 난관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서류를 정리하고 이사를 와버린 아는 동생 하나가 아직 남은 상처를 보듬으며 하던 말... "언니~이혼이란 알고 보니 가족을 찟어 내는 거더라고..그것 땜에 너무 괴로웠었어. 이혼만이 최선의 길은 아니야~"
주변에 어쩔 수 없는 아픔의 결말을 내린 채 살아가는 가까운 이들의 고통이 남의 몫 같지 않던 시간 시간들... 부부가 오래 살았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결혼기념일에 숫자 더하기. 편안한 듯 싶지만 그래도 마음 놓고만 살 수 없는 요즘 부부들의 생활 안에서, 오늘도 내일도 나 역시 젊어서 안 해 본 공경과 지극히 조심스런 내조를 행하며 살아갈듯 싶다.
귓전에 남는 그 이쁜 동생의 말소리... "언니!~오래오래 잘 참고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 너무 존경스러워."

(1978년 첫선이 내겐 마지막 선이 되버린 4월...싱글벙글이네~그리도 좋던가요? )
신혼초...인사를 드리러 갔던 시댁 작은 아버님의 말씀 "부부란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살아간다" 그 말씀이 그리 썩 달갑지 않게 느껴지던 23살. 그후로 강산이 3번이 변하고도 남으니, 이젠 저도 그리 말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남자로서가 아닌 가족이란 신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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